인생은 다 그런거야

사랑과 배려, 그리고..,

당신을 진심으로 초대합니다.

일반자료실/일반자료실

잉카문명 (-文明 Inca Civilization)

인생은 다 그런거야 2008. 7. 18. 13:52

잉카문명 (-文明 Inca Civilization)

 

요약

남아메리카 페루 남부 쿠스코분지를 중심으로 15∼16세기 초까지 번영했던 문화.

설명

남아메리카 페루 남부 쿠스코분지를 중심으로 15∼16세기 초까지 번영했던 문화. 북쪽으로는 에콰도르로부터 남쪽으로는 칠레 중부에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하여 그때까지의 안데스문명을 집대성했다.

잉카의 역사
잉카족은 일명 케추아족이라고도하며, 그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전설을 종합하면 13세기 무렵 쿠스코분지에 침입하여 원주민을 정복하고 정주한 것으로 짐작된다. 정복자 에스파냐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잉카의 전설에 따르면 초대 망코 카파크 이후 13명의 황제가 있었는데, 제7대까지는 전설상 인물이다. 제8대 황제 비라코차시대에 강적 창카족의 공격을 받았으나, 그를 격퇴하는 데 성공한 그의 아들 티투 쿠시가 제9대 황제 파차크티가 되어 많은 개혁을 단행하는 동시에 주변 여러 민족을 정복하여 제국을 이룩하는 데 기초를 닦았다. 파차크티 자신이 정복한 곳은 티티카카호(湖) 연안 루파카족과 쿠스코 동쪽에 있던 쿤티스유지방 등이었고 그 아들 투파 잉카 유팡키도 페루 북부에 쳐들어가 치무왕국을 멸망시켰으며, 파차크티가 죽은 뒤에는 에콰도르와 칠레, 아르헨티나의 북부까지 정복했다. 15세기 말 잉카(왕이라는 뜻)가 죽자 우아이나 카파크가 잉카가 되어 에콰도르지방 개척에 주력했기 때문에 원래 수도인 쿠스코에 있던 잉카지배층과 에콰도르 키토에 있던 잉카 부장(部將) 사이에 대립이 시작되었다. 1525년 무렵 우아이나 카파크가 죽은 뒤 쿠스코에는 우아스카르가, 키토에는 아타우알파가 대두했으며 1531∼1532년에 내란이 일어났다. 아타우알파군이 쿠스코군을 완전히 제압함으로써 내란은 끝났으나 그 직후 F. 피사로가 인솔하는 에스파냐군이 침입하였다. 1532년 11월 16일 고원도시 카하마르카에서 에스파냐군에게 아타우알파가 사로잡혀 사실상 잉카제국은 무너졌다. 그 뒤 망코라는 잉카와 그 아들들이 1571년까지 쿠스코 북서쪽 산 속에 진을 치고 에스파냐인에게 저항을 계속했다.

정치·경제
잉카문명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정치제도와 경제통제방법이다. 이론상 잉카국가에서는 각지방 토지를 잉카(왕)와 태양신 및 일반 국민을 위해 셋으로 나누어 경작하고 잉카와 태양신을 위한 수확물은 창고에 보관하였으며, 그 일부는 쿠스코로 보냈다. 따라서 쿠스코는 전국에서 집하되는 방대한 물자집적소가 되었고, 그 물자를 이용하여 잉카는 국민을 대토목공사나 군대로 징발할 수 있었다. 동원되는 인구는 10진법에 따라 10명·100명·1000명 단위로 집단을 조직하고 1만 명을 기준으로 행정책임자를 임명하여 통솔하게 했다. 전국을 4개 지방으로 나누고 각지방마다 왕족 중에서 지사를 선발했다. 중요한 곳에는 행정관을 파견하는 한편 순찰사는 각지방을 순시하며 매년 인구통계조사를 하기도 하고 재판도 했다. 세금으로 납입되는 물자의 수송이나 군대의 이동 등을 위해 전국적으로 도로망이 만들어졌고, 도처에 숙소와 창고가 설치되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했다. 수도와 각지방 사이에는 파발꾼을 두어 연락을 취했으며, 군사(軍事)나 제사용 물자는 각지방에 세워진 <처녀관(處女館)>의 여성들에 의해 생산되었다. 수도에는 태양신과 잉카왕에게 시중드는 여성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선택된 자>라고 불렸다. 남성들은 야나코나라고 하는 사용인을 각지방 공동체에서 뽑아 귀족이 소유하는 사유지 경작이나 가축지기일을 맡았다. 이 나라에서는 강제적 인구이동도 시행되었다. 국가통치를 위하여 태양신 숭배나 공용어(케추아어)의 사용이 강요되었으나, 잉카사회의 기본단위는 아이유라는 각지의 친족공동체였으며 또 잉카 이전의 지방세력이 편성한 정치조직이나 안데스의 고도차를 이용한 생산방식도 대부분 그대로 답습되었다.

물질문화
수레나 글자 등은 없었으나 도로건설이나 파발제도 등이 그 결함을 보충했다. 기억보조용구로 키푸라는 결승(結繩)을 이용했다. 건축에는 정교한 석공술(石工術)을 구사하여 웅장한 신전·궁전 등을 많이 지었으며 그 유구(遺構)가 현재 쿠스코시와 그 주변에 남아 있다. 철(鐵)은 모르고 있었으나 야금술(冶金術)이 성행하여 청동(靑銅)으로 장식품뿐 아니라 생산도구까지도 제조했다. 금은가공품은 대부분 에스파냐인에게 약탈당했기 때문에 소형동물상이나 인간상밖에 남아 있지 않다. 토기형식 중에서 가장 전형적인 것은 손잡이가 달린 뾰족바닥채색토기[尖底彩色土器(첨저채색토기)]이며 모양은 거의 일정하나 장식기법이나 문양이 다양하며 중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잉카문명 특유의 컵모양 목기(木器)도 제작되었다. 직물은 전통적인 베틀을 사용하여 귀족용과 서민용으로 구분하여 직조되었다. 남성용 의류는 상의허리부분에 띠를 매게 되어 있으며, 추울 때는 모포(毛布) 한가운데에 머리를 내미는 구멍이 뚫린 판초를 두르게 되어 있었다. 여성은 허리에 넓은 장식허리띠를 매는 긴 옷을 입고 그 위에 털목도리나 망토를 걸치고 금속제 장식핀으로 고정시켰다. 가죽으로 만든 샌들을 신었고 또 천으로 만든 머리장식을 썼는데 그 모양과 색은 각지방 민족집단마다 달라서 일종의 표식이 되었다.

생산과 교역
잉카의 기본 산업은 농업으로, 해안저지 및 고원분지와 골짜기 등에서 옥수수·콩·고추를, 고지에서는 감자·키노아·오카 등을 경작했다. 안데스 동쪽 사면에서는 코카·유카 등을 재배했다. 고원의 분지나 좁은 골짜기의 농업생산을 향상시키기 위해 계단식 밭경작을 하는 등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그 밖의 산업으로는 목축과 어업이 있었는데, 목축은 해발고도 4000m 이상의 고지에 적응하는 라마·알파카의 사육으로서, 그 모피와 고기의 이용뿐만 아니라 배설물도 농사용 비료로 이용했고 수확기 농작물 수송에도 라마가 이용되었으므로 고원에 사는 목축민과 농민 사이에는 공생적 관계가 이루어졌다. 라마의 목축민은 안데스 동쪽 사면 코카산지나 해안지방까지도 대상(隊商)을 이루어 여행하며, 그 지방 산물을 고지농민의 산물과 교환했으므로 그들은 일종의 교역상인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품목은 소금, 구아노(비료로 사용하는 해조의 배설물), 말린 생선, 조개류, 해초류, 말린 과실, 바다새우 등이었다. 어민은 페루해류의 풍부한 해산물을 잡아 내륙 주민들과 교환했다. 어민 외에 돛을 단 뗏목으로 태평양 연안을 항행하며 통상하는 상인이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신화와 종교
잉카의 신화에 따르면, 비라코차라는 창조주가 이 세상과 인간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는데, 천체 중에서도 태양은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으며, 그 아들 망코 카파크가 티티카카호에 내려와 잉카족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또는 쿠스코 남동쪽 파카리쿠탄포동굴에서 망코를 비롯한 잉카의 선조들이 나와서 쿠스코에 거주하였다고도 한다. 태양 외에 천둥·달·별 등도 신성시하였으며 또 대지모신(大地母神) 파차마마나 수신(水神) 마마고차에 대한 신앙도 민중 사이에 퍼져 있었다. 성스러운 영혼이 머무는 장소를 와카라 했으며, 인공신전이나 성소(聖所)뿐만 아니라 바위·산·샘에도 신령이 깃들인다고 여겼다. 쿠스코에는 시를 중심으로 350곳의 와카가 있었는데, 이것들은 시 중심에서 방사선모양으로 펼쳐진 세케라는 상상(想像)의 선(線) 중앙에 정연하게 배치되었다. 쿠스코의 최고 신관(神官)은 잉카와 같은 권위를 가지며 모든 신전과 와카를 지배하며 사제(司祭)의 임명권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쿠스코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던 해안지방 파차카마신전은 그 신탁(神託)이 중요시되어 에콰도르에서도 순례하러 왔다고 한다. 쿠스코와 각지방 신전에서는 역일(曆日)에 따라 제례를 거행했다. 쿠스코의 잉카는 쿠스코시 동쪽과 서쪽 언덕 위에 돌기둥을 세워 일출과 일몰의 각도를 관측하여 1년이 12개월인 사이클을 지켰다. 6월 동짓날의 태양제사, 9월의 달제사, 12월의 대제(大祭) 등이 특히 중요시되었다. 제사 때마다 다수의 라마·기니피그를 산 제물로 바쳤고 옥수수나 또는 그것으로 만든 치차술을 바쳤다. 희생된 라마의 폐장(肺臟) 상태를 보고 점치는 칼파라는 신탁도 행해졌다.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은 새로운 잉카의 즉위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행했다. 또 14세가 되는 잉카의 자제는 12월이 되면 쿠스코 근처 와나카우리언덕 위에 있는 와카에서 라마를 산 제물로 제사지내고 단식(斷食) 등의 의식을 마친 뒤에 전사(戰士)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

'일반자료실 > 일반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원의 가을  (0) 2008.09.25
Kiss(키스) 하는 법  (1) 2008.09.02
이온엔진 / 과학  (0) 2008.07.28
시골초등학교  (0) 2008.07.21
비단길 (緋緞- Silk Road)  (0) 2008.07.18